[백광엽 칼럼] 꼭 기억해야 할 경제학자 171명

입력 2022-03-17 17:22   수정 2022-03-18 08:45

발효 10주년(15일)을 맞은 한·미 FTA의 성과를 따지는 것은 이제 입 아픈 일이다. 모든 데이터가 나라를 뒤엎을 기세였던 반대운동가들의 주장과 정반대다. 10년 동안 대미 수출 증가율은 전체 수출 증가율의 3배다. ‘미국산에 밀려 설 자리를 잃을 것’이라던 농축수산물도 외려 대미 수출이 82% 급증했다.

“나라가 망할 것”이라던 저주는 모조리 빗나갔다. 현직 판사까지 가세해 ISD(투자자-국가 소송) 조항을 “사법주권 박탈”이라며 거품 물었지만 지독한 편견으로 판명 났다. ISD 소송은 10년 동안 3건에 그쳤고, 3건 모두 사법주권 훼손과는 단 1g도 관련 없는 합리적 쟁송이다. 서민 삶이 파괴되고 양극화가 극심해질 것이라던 겁박도 선동에 불과했다. 협정 발효 직전 8.3배였던 ‘5분위 배율’(상·하위 20% 집단 간 소득 격차)은 5년 뒤 7.0배로 크게 개선됐다.

지난 10년의 변화는 한국 진보경제학의 파산을 고하고 있다. 한·미 협상 시작 한 달 만인 2006년 7월 이른바 진보경제학자 171명은 “FTA가 큰 재앙을 몰고 올 것”이라는 반대성명을 냈다. “나라 주권보다 미국 자본의 무한자유를 상위에 둔 불평등 협정”이라고 규정했다. 경제학자들의 이런 견해는 당시 달아오르던 반대운동에 기름을 퍼부었다.

교역은 ‘제로섬’이 아니라 ‘윈윈’ 게임이라는 ‘비교우위론’은 여태껏 한번도 반박되지 않은 이론이다. 일종의 경제학 절대법칙을 부정하고 검증 안 된 가설에 의존하는 비(非)과학을 반복하는 한, 진보진영의 실패는 필연일 수밖에 없다.

‘FTA 전투’에서 부끄럽게 패퇴했음에도 ‘K진보경제학’의 준동은 더 극성이다. 일단 171명 중 반성하는 사람이 전무하다. 포용·분배·서민 경제로 간판갈이한 뒤 이단적·실험적 이론을 끊임없이 주조해 왕성하게 설파 중이다.

궤도이탈한 진보경제학의 숙주는 진보 정치권이다. 한·미 FTA 반대성명 발표의 실무총괄이던 홍장표 부경대 교수는 소주성을 설계하고 문재인 정부 초대 경제수석이 됐다. 그는 지금도 ‘국내 최고싱크탱크’인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으로 영향력을 행사 중이다.

문 정부에서 요직을 꿰찬 반대성명파는 열 손가락으로도 다 못 꼽는다. 김상조(공정거래위원장·정책실장) 김상곤(교육부 장관) 장지상(산업연구원장) 이정우(한국장학재단이사장) 박진도(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장) 교수, 강신욱 연구원(통계청장) 김유선 소장(소주성특별위원장) 등이 대표적이다.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에도 조복현·송원근·홍태희 교수 등 3명이 포진 중이다. ‘크고 무능한’ 문 정부의 실패는 FTA 반대성명파가 정책을 주도한 데 따른 예정된 결말일 뿐이다.

문 정부 5년이 끝나가자 이번에는 거대 여당 내에 이들의 둥지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정우·장지상 교수는 이재명 대선 후보의 정책자문그룹으로 뛰었다. 기본소득제를 총괄한 강남훈 교수, ‘기본 시리즈 공약’을 관장한 최배근 교수, 이 후보의 싱크탱크 격인 경기연구원 임수강 연구원도 반대성명파다. 정세균 대선 경선 후보 책사였던 이우진 고려대 교수 역시 반대성명에 이름을 올렸다.

FTA 성공과 소주성 실패로 허상이 백일하에 드러났지만 안심은 금물이다. 그들이 여전히 한국 사회의 핵심 논쟁에서 종횡무진 중이어서다. 대선을 거치며 핫이슈로 부상한 무한 재정확장, 국토보유세 같은 ‘신상’ 정책의 원작자도 성명파들이다. ‘재정준칙 무용론자’ 정세은 충남대 교수, ‘재정건전성 신화 탈피론자’ 이강국 리쓰메이칸대 교수 같은 소장학자가 선봉대 격이다. 또 작년 5월 ‘토지초과이득세 도입 촉구 공동선언’에 참여한 지식인 43명 중 7명이 반대성명파다.

국내 경제학계에서 진보학자들의 점유율은 10% 미만이다. 하지만 좌우를 기계적으로 안분하는 게으름 탓에 공론장 점유율은 절반에 가깝다. 심각한 과잉 대표와 여론 왜곡으로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셈이다. 한·미 FTA를 기화로 커밍아웃한 경제학자 171명의 행보를 예의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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